병증이 심화되지 않는다. 향유하지 않는 빌어온 언어가 휘발하고 지질한 사전이 열등감을 품고 있다. 혼자가 아니라 말했지만 나는 혼자다. 다시. 또 다시. 이것은 내 일기장에도 없었던 바다.
그다지 슬프지는 않지만. 삶이 흔들렸다. 모서리가 닳은 식탁이 기우뚱거렸고 플라스틱인지 뭔지 가볍고 좋은 소리가 나지만은 않은 쌈장 그릇이 미끄러졌다. 와끌한 열기가 퍼진다. 각자의 생들이 펼쳐져 뒤엉킨다. 먼지 쌓인 시멘트 바닥이 신발 밑창 아래 매끈하다. 나는 그때야 정신을 다잡았다. 김도운이 마늘 조각을 꼬나 물었다.
고기 먹고 국물 먹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숟가락들이 맞닿는다. 쓰잘데기 없는 도운이가 시선을 내 눈에 맞췄고 대본을 들이밀었다. 애틋한 착각을 주는 것이 고마웠다. 대본 뭉치 위에는 이렇다 할 수 없는 크로키 몇 점과 김도운의 이름이 쓰여져 있다. 유성 마카. 바싹 탄 고기의 표면이 목을 긁었다. 국은 너무 매웠다.
글을 늘여쓰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확신할 수 없다. 문단을 대강 잇고 또 이어가는 것이 생명을 잇는 것인지 잘라야할 꼬리인지,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지도 혹은 마음에 들어할 지도 모르는 채 쉬지 않는 것이 글이 느는 것이니. 나는 마뜩잖고 김도운은 내 글을 꼼꼼히 읽었다. 나의 목에서 발견한 긴 손톱 자국이 내 글줄의 아래에 쳐져 있는 것을 보면 기뻤다, 꼴에.
문단마다 어째서인지 결론을 내린다. 사회에 좀처럼 녹아들지 않는 나는 인정이 인정이고 존재가 불인정이다. 이제 이 끄트머리에 불안정을 가지고 말놀음을 하는 것도 지쳤다. 불판 위 양파가 오그라들었다. 이것 봐, 나는 또 끝을 내려 하고 김도운같은 애들이 옷깃을 끌어 잡아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이다. 뭐해. 다릴 꼬고 폰을 보고 있는 김도운을 불렀다. 불판에 음식물이 지나치게 달라붙지 않느냔 얘길 시시콜콜 하고 버섯을 뒤집지 않는 것에 쓰는 신경 새로 찬바람이 침입한다. 비로소 계절이 느껴져서 현실감이 왔다. 나는 거지 발싸개같은 로망스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고. 다행히 너를 만난 때가 생생하다. 무뎌졌다고 해서 돌아버린 것이 아니란 사실 적시에 눈물이 났다. 겨울이면 흔히 보이는 모습이었으니 나는 고개를 든다. 너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아서, 문장과 비유가 건조해지지 않아서, 아직 절박하지 않고 어쩌면 미래를 꿈꿀 수 있을지도 몰라서 행복했다.
여기에 또 그런 말을 썼을테지. 과거의 나를 혐오하여 앞으로 나아간다는 발상이 시든다. 시든 채로 살아왔다. 짧아지는 문장이 꼭 나의 명줄같았고 그럼에도 나의 생명줄이라 이제야 너에게 밝힌다. 김도운은 별말 하지 않았다. 그렇지, 그게 너의 역할이지. 나의 병증은 너의 입을 막았고. 대신 도운이가 내게 전화를 건네주었다. 온도가 많이 느껴졌다.
십일 월 삼 일.
'줄거리를 만들지 않는 나는 평소와 같이 좀먹었다. 욕설을 쓰지 않으리라 다짐한 삼 일, 도운이의 대본을 첨삭했다.
말이 이어지지 않는데 이럼 안 되지.
겸손한 마음을 재차 고쳐먹어야 나는 계속할 수 있었다. 너는 하얀색과 검은색 속에서 숨을 자주 쉬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 쉼표들을 다 지워버렸다. 저린다. 손목이. 어찌할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