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있었다. 검은 방이다. 칠흑보다 어둡고 절벽보다 아찔하며 상처보다 깊다. 여기에도 공간이라는 게 있는 걸까 싶은, 정신이 멀어지는 공간. 서있는 것만으로도 어지럽다. 숨을 쉴 수록 텅 빈 몸 속에 수없이 웅웅거리는 공기가 찬다. 게워내고 싶다. 앞이 아득하다. 이곳이 바닥인지, 천장인지, 혹은 벽인지도 알 수 없다. 몸을 움츠러들게 하는 소름끼치는 공기만이 소년을 끌어당기는 힘을 이리저리 바꾸고 있다. 발을 딛기는커녕 떼기도 두려워졌다. 고의로 여기 오게 된 것이 아니다. 여기, 작을 지 클 지조차 모르는 숨 막히는 여기에서 있고 싶지 않다. 무언지 판단도 되지 않지만 안다. 그냥 눈을 세게 감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알 수 있는 게 있다. 안다고 생각되는 게 있다. 여기 갇힌 건지도 몰라. 좀전의 무섬도 잊은 채로 어느 쪽으로 뛰쳐나간다.
나왔나? 여기 있기 싫어.
서있던 그곳과 지금의 '여기' 가 같다는 확신도 물증도 없다. 하지만 그것까지 의심하는 건 어찌됐건 '여기'를 절실히 빠져나가려는 의지가 없는 멍청이. 분간이 가지 않는 똑같은 장소, 다. 다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이 곳도 아까의 '여기' 와 똑같이 두렵다. 나가고 싶다. 아님 적어도 이 울려 퍼지는 초음파같은 게 없어졌으면 좋겠어. 귀가 아파, 머리가 아파, 아파….
총이 장전되는 소리다. 방금 정말 그랬다. 뭔가 있나? 무언가 있는 곳인가? 그리고 바로 번쩍거리고 휘황찬란한 반짝임이 - 빛은 어디에? - 나타나고, 엽기적으로 큰 총이 불쑥, 그려진 듯 생겨났다. 만화에 나올 것처럼 다채로운 데다가 그에 버금가게 번쩍거린다. 뒤이어 더 웃기게 작은 남자가 총에 어깨를 대고 걸어왔다. 점점 커지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분명 걸어오는 거다. 알고보니 소년이었다.
아, 그건 자기였다.
- 누구야? - 나야.
그런다고 알 듯 싶으냐, 했다.
- 토할 것 같아? - …조금. - 거짓말. 아직 거짓말에 싸여있구나.
소년은 즐거이 웃었다. 모든 걸 다 알고 있어서, 알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새어나오는 웃음이었다. 그걸 보고 소년은 그 소년이 자기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 아까 뭐 쓰더라? 편지.
맞는 걸까? 누군가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보여진다면 끔찍할 편지였다. 그렇다면 이 녀석이 자신이라고 믿는 편이 낫다.
- 내일의 나에게 보낸다고. 그렇군. 근데 어쩌지. '내일의 나' 가 나고 '내일의 나' 는 죽어. - 뭐? - 말 그대로.
그럼 내 앞의 너는 뭐야?
- 당했다면 되돌려줘. - - - - 있지, 나는 살고 싶어. 너도 살고 싶어?
이제껏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하지 못하게 이해가 힘든 거였다. 소년의 입이 천천히 떨어지더니 이내 가득가득 차오른 답답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 영문 모르는 나를 어서 빼내줘! 차라리 그 총으로 날 꿰뚫어줘! - 이 총의 윤기는 그 녀석들의 말들이야. 그게 닦고 닦아준 거야. 본인들이 손질해 준 걸로 시험당해본다고. 어때?
소년은 천연덕스러웠다. 미친 듯이 얄미워서, 총을 뺏어 쏘아버릴 뻔했다. 그러나 조금 생각해보니 그건 자살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질투와 살의가 느껴질 정도로 편안해보이는 또 다른 소년은 내일의 본인 - 소년 - 이라는,
- 네 차례야.
속삭이다 못해 소년이 선 사방으로 스며들어 녹아들어 부추기고 있었다. 일러주고 있었다.
어떤 꼴이 되어서도 살아돌아와. 너의 마음은 너만의 것, 너와 내일의 너 - 지금의 나 - 의 것이야. 여기가 어두워? 여긴 너의 안이야. 생명은 반짝여야지만 생명이야. 내가 존재하기 위해 어제의 나에게 얘기하러 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