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에 만날래요? 합작
https://cafe.naver.com/writiescollabo/708
전화가 걸려온 건 그때였다.
“토요일에 뭐 할 거예요?”
“자살이요.”
열어둔 냉장고가 웅웅거렸다. 뻘거죽죽한 핏빛이 흰 벽에 넘실댄다. 상대는 말이 없다.
“토요일만큼 날은 없죠.”
“…무슨 뜻이에요?”
무슨 뜻이긴, 이 사람아.
*
밤이 되었다. 새벽이 되었다. 날이 밝기에는 아직이다. 습관처럼 핸드폰을 켠다. 그냥 검다. 꺼져있다. 달력을 찾는다. 그전에 시각이 눈에 띈다. 멀었다. 수요일인데, 수요일이 아직 멀었다. 목이 말라 가고 있는 걸 눈치챈다. 정수기를 찾는다.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린 걸 잊었다. 냉장고를 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냉장고의 안도 질릴 듯한 주황빛이었다. 팔이 마비될 것 같다. 욱신욱신해서 그 손 놓으라고 하고 싶다. 발등이 차다. 냉기가 흘러나온다. 안의 의미 없는
캔들, 봉지들, 병들을 바라본다. 딴 세상 보듯 구경한다.
빙빙.
냉장고가 돌아간다. 붉은 빛으로 물들어갔다. 의아해하다 이내 납득한다. 그대로 금요일까지
두기로 한다. 정수기처럼, 다 울어버리고 눈물을 사와야 하는 불상사와 그의 걸맞은 끝을 맞지
않기를 기도한다. 금요일 열한 시쯤에 돌아와 또 다른 붉게 물든 벽을 보기로 한다.
문득 피 묻은 사과를 먹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 앞에서 잘도 당당하게 서서, 깨져있는 눈
을 한 네시 반의 나였다. 지금 몇 시? 앞의 나는 깨어있었다.
“너, 기다리고 있구나.”
“나를 기다리고 있구나.”
“날을 기다리고 있구나.”
“사과로는 죽을 수 없을 거야. 안심하고 실망하며 먹어.”
말을 나누기에도, 구분하기에도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계속 보고 있으려니 나 역시 눈이
아파오는 것 같았다. 그 역시 나라는 걸 망각하고, 최상의 상태로 맞는 자살을 위해 나는 도망
갔다.
그러고 숨어있는 동안 온 수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나는 모든 피로 얼룩진 사과를 혐오하며 지냈다. 밤과 아침의 사과는 천차만별, 밤을 택했으면 했으면서 새벽에, 떨리는 다리로, 제 집이라
짐짓 떳떳하게. 그때부터 진즉에 찔러버렸으면 했으면서. 숨어버렸으면, 없었으면 했으면서.
괴물의 눈을 깨뜨리면 클리어 되는 게임이 있었다. 재작년에 나온 플래시 게임인데, 일렁이는
거대한 눈깔이 다가오-ㄴ다는 설정으로 크기를 시간에 따라 일정량 키운-면, 어느 것이든 그것은 부
서지게 되어있었다. 단순한 프로그래밍이었다. 손가락, 어림, 어리석음이 있었고 각자의 손에 곡
괭이, 망치, 돌팔매를 들려준 셈이었다.
게임 공유 카페에 업로드 되어 시작된 게임은 인터넷으로 퍼져나갔다. 누구든지 안할 듯한 게
임은 모두에게 사랑받았다. 이름도 모를 블로그에 올려졌다. 비가 와서 어두웠던 것 같던 여름, 오후, 학교에서도 거부할 것 없이 넘쳐나듯 그 게임을 했다. 누르면 짧고 날카로운 소리가 확대
된 소리를 불러왔고, 더 큰 불행을 가져왔다. 탐욕스러운 손이 올라탄 마우스가 째깍째깍 남은
시간을 쟀고, 나의 남은 시간은 그렇게 카운트다운 되었다. 밖에서는 우르릉 천둥이 치고, 비가
날고 광적으로 여기저기 사방팔방 내 머릿속에서도 유리가 막 깨졌다. 쨍그랑! 쨍그랑! 쨍그랑!!
……
그날의 광기는 폭풍보다는 사과처럼 휘몰아쳤다. 번득이는 미성숙한 눈을 하고 컴퓨터를 들어
가겠다 싶게 바라보는 걸 보았다. 어리다. 어리다. 틀림없이 어려있었다. 끔찍하게 침묵적이고, 암묵적이고, 천둥번개를 넘어서서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그들의 목표야말로 나였다. 나는 챙강
챙강 깨지며 단단한 물건을 부수게 설계된 물건들 - 그들 자신을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이 나에
게 날아오는 걸 쳐다보았다. 이유 없이 그건 나였고, 피와 비명과 희생을 담고 있으니 목격과 현장이라는 단어가 맞았다. 나의 사고현장은 아주 대단했다. 파삭파삭 가루 되어버릴 줄 알았으나, 그들의 희망대로 나는 게임이나 재현하고 있었다. 비는 아직 왔고, 불타고 있었으며, 피든
뭐든 흐르고 있었다. 기억도, 함께, 조각나서, 긁어모아, 쉼표로, 이어놓지 않으면, 안 되었다.
훌륭하게, 수요일이 되어주게 돕는 화요일이 그날만큼 아닐 수 없었다. 그 말인즉슨 내가 조각난 눈을 학교서 내내 모으고 있다가 집 와서야, 불안에 떨며, 사과를 먹었다는 뜻이다.
오늘은 분명히 수요일이고, 그러므로 화요일이었음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번 수요일은 그날
로부터 이 년 남짓 후라는 것이 된다. 나는 여전히 그들이 깨뜨리기를 좋아하는지, 어린지, 사
과는 먹고 있는지 궁금하다. 또한 그 게임의 개발자 역시 곡괭이나 사과인지 알고 싶다.
이 년 전인가, 그때부터 급작스럽게 눈이 깨지는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깨지고, 그 덕에 내 눈깔에는 피가 가득 차있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피는 눈물인 양 흐르고 넘쳤다. 아침에 문득 일어나 집 안을 걷노라면 발에 수십 수백의 파편이 박혀들었다. 끔찍했다.
금요일. 진작에 알고 있었던 걸 이용해 질 나쁜 사과를 좀 사오기로 한다. 주소를 찾는다. 우
연히 마주치기 좋은 장소에 있다. 비겁하게 도망 가버리지 않았기를 빈다. 붕대를 감는다. 깨진
눈을 쓸어 쓰레기통에 넣는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버스를 탄다. 목적지에 간다.
언제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놈을 죽일 기세로 가서 마음을 죽인 다음 돌아와서
목을 매달겠다.
39
물론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없다. 그건 그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고, 그런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
“…그 게임, 그럭저럭 살아남고 있는데.”
“그게 그런 내용이었나?”
“아, 너로구나.”
가만히 듣고 있자보니, ‘아, 너로구나.’ 라니. 이건 무슨 소리야?
“별거로 다 찾아오네.”
“나 알아?”
“상대할 시간 없으니 꺼져.”
“나 아냐니까?”
“알 게 뭐냐.”
그랬다. 그래서 오늘부터 나를 알 일 없거나 모르는 사람은 때려죽이기로 했다. 다행히도 비닐봉지 가득 담긴 사과는 꽤 단단했다.
사과를 테두리 따라 주욱 늘어놓으니 사과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핏물을 빨아먹어서 끈적끈적하고 비린 사과였다. 그걸 집어 들었다. 먹지는 않았다. 가방에 넣었다. 이 가방에도 사과향이
밸 것이다. 허름한 집의 현관문을 걷어차고 호기롭게 나온다. 사실 감정은 그 반대지만, 뭐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해가 오후로 접어들었다.
*
“토요일에 뭐 할 거예요?”
“자살이요.”
열어둔 냉장고가 웅웅거렸다. 뻘거죽죽한 핏빛이 흰 벽에 넘실댄다. 상대는 말이 없다.
“토요일만큼 날은 없죠.”
“…무슨 뜻이에요?”
“알고 싶어요?”
“네.”
“다음 주에 알려줄게요.”
“그 말은 안 알려줄 거라는 얘기네요.”
“그리고 당신 꺼지라는 얘기죠.”
초침이 똑딱거리며 나의 수명을 일러준다. 안 잊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전화 너머로 대답
해주는 10:27 p.m.
“금요일 밤에 만날래요?”
“지금이 금요일 밤입니다만.”
“아.”
시간이 얼마 없다. 전화는 쉽게 끊기지 않는다.
“가고 있어요.”
“올 거예요?”
“물론.”
나야 말릴 필요는 없다. 죽음이나 토요일, 혹은 그 사람을 기다리는 냉장고에 들어간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