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날이 밝는 것을 원망스러워하고, 기뻐해본 적 없다. 아무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새벽에는 죽음이 흘러가고 아침은 꾸역꾸역 우리 목 아래까지 차올랐다. 간다. 갈 때가 된 거야. 이제 죽을 때가 된 거야, 그치.
자살에게 먹이같은 건 안 줘. 난 멍청이처럼 살기 싫어서, 그딴 이유로 죽는 거 아니야. 죽어야 하니까. 그냥 일과처럼 눈에 띄지 않고, 자연스럽게.
바람이 새삼 차다. 아까까지만 해도 더웠는데.
살인자새끼. 네가 흘러가는 찬 바람처럼 귓가에 속삭인다. 달고 날카로운 말은 귀를 에듯이 맴돌았다. 겨울인가봐, 겨울. 귀를 떼어버릴듯이 비벼버렸다. 손에 닿는 피부의 감촉에 부아가 치밀어오른다. 손을 덮는 옆머리를 뽑아버리고 싶은 분노로 넘어간다. 역시 하고 다니는 게 나았어, 머리핀. 구석에 처박아둔 핀을 찾는 것으로 거슬리는 목소리를 차단한다. 금세 온 집은 차가워졌다. 네가 웃는 소리는 이제 내 안에서 웅웅 울리다 사라진다. 씨발, 부적도 아니고.
시끄러운 델 가야지. 징그러운 목소리를 뒤에 숨기고 살아있는 것들이 떠드는 소리로 귀를 멀게 하고싶어.
...그리고 나는 그런 곳에 섰다. 그런 조잡한 말로 비웃을 네가 아닌데. 입안이 썼다. 모른다고 했지만 알고있었지. 그냥 두는 게 아닌데, 그날. 내게 떠오른 생각, 거친 감정들만 엮어서 저주인형을 만들어, 수 번을 괴롭히고. 그러니까 결국 이렇게 돼버렸잖아. 토가 올라온다. 의미 없는 소음이 비호감으로 돌아서는 순간이다.
뭐. 뭐하라고? 죽으라고? 어, 그래. 근데 끈질기기도 엄청나다, 가냘픈 꽃나부랭이가.
너는 꽃이고 나는 한숨.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넌 여느 꽃처럼 고이 가만히 있었다. 그치만, 그치만... 염병할 엄마, 아빠, 그으, 그 새끼는 나 죽이려고 들었었는데. 나 진짜로 봤는데. 나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는데. 난 정말 가만히, 존재할 뿐이었는데. 꽃밭에 있는 것처럼 투명한 너머에서 예쁨받으면서, 시발, 그렇게 있었는데. 나 존나 죽여버릴 작정이었다고. 그런 표정이었는데. ...착각 아닌데. 엄마. 아빠. ...엄마?
- 한이는 말 함부로 하지 말고. 옷 갈아입고 와.
- 저 관장님 엄마라고 안 불렀는데...
- 시끄럽고, 연습이나 해. 곧 대회잖아.
아무도 모르게 운동을 배운다. 기억이 안 날 적부터. 기억이 안 나는데 그나마도 혼자 말없이 오고간 것밖에 없으면 대체. 버려지면 그런 것 빼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돈이라도 안 끊은 게 다행이라고 여겼지만, 통장에서 한 달에 얼마씩 빠져나가도록 해둔 거라는 깨달음은 잔인하게 금방 와버린다. 잊혀진 돈이야. 내 목숨값이라고 생각하면 대충 계산이 맞았다. 고등학교는 어떻게 다니는 건지 짐작하다보면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나는 집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가끔 마주치는 건 너. 덤덤한 척하는 얼굴로 깔보고 우월을 남김없이 핥아먹을 이 새끼. 안 가던 길로 가봐도, 일부러 돌아가봐도 한 달에 두어 번은 내 앞에 서는 너. 가끔 위협도 안 되고, 우습기만 한 머리핀으로 네 팔을 찍어버리기도 했다. 힘을 써서 억지로 본 피. 넌 그걸 보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화가 치밀었다. 주먹 쥔 내 손에 핀이 아직 들려있어서 더 미칠 지경이었다. 그걸로 그냥 찌르게, 음.
그리고 어느 날, 너는 그런 곳에, 섰다. 라디오 시그널 음악처럼. 바람과 애써 기억을 지운 것같은 말소리를 바탕으로. 밀고, 떨어지고, 꽃이 떨어지고, 봄이 온 모양이다. 숨을 짓누르는 꽃잎이 터져나왔다. 붉은 꽃. 그 로고가 나오면 다시 방송 시작이야. 내 옆에서, 뒤에서, 앞에서, ...내 안에서. 잘개 부수고 싶은 반복방송이었다. 손에 힘을 줘 그러쥐었다. 우득, 이렇게 손뼈라도 부숴버릴 수만 있으면 좋을텐데.
-- - 목 뼈는?
- 갈비뼈도 있잖아, 한아.
씨 - - - -- 다 알잖아, 너 잘하잖아. 할 수 있었잖아.
...갑자기 넘긴 머리가 서늘해져온다.
뭐, 그러니까. 할 수 있었다고, 나. 응. 그 새끼 배도 치고, 얼굴도 갈겨서 죽여버릴 수 있었다고. 그게 가장 먼저 생각나지 않았냐고, 어.
?
뭘할 수 있었다고. 내가 뭘할 수 있었다고? 아, 제발, 한아. 유치한 얘기 하지 말자. 징징 짜지 마. 그치만 시발, 한아. 내 이름만 들어도 한이 잔뜩 담긴 것 같지 않냐? 그만, 그만해. 하지 말라고.
[ 하지 말라고! ]
...그만. 이런 거 그만. 정말. 뚜욱. 한아, 울지 마. 안 울어, 개새끼야. 너 말에 매가리가 하나도 없어. 응? 응. 그만. 동요하지 않기로 했잖아. 끝까지 그냥 평범하게 뒤지기로. 근데 나 가화 생각이 나서 숨을 못 쉴 것 같아.
종래엔 나도 이런 곳에 섰다. 바람, 나는 바람들과 손을 잡았고. 여기 애들이랑 다, 죽을 거야. 얘네가 다 나 밀어줄 거야.
가기 전에 말이나 하자. 사랑하는 가화, -- - * -, 씨발, 너처럼 나도 떨어져죽는다. 개새끼야. 그러니까 징그럽게 달라붙어서 계속 헛소리 지껄이지 마.
...제발. 괴로워. 아프니까.
빌어먹게 되고 싶었던 꽃이 돼서, 떨어져.
형과는 달리 난 지옥에 갈 거야.
좆같은 꽃, 같으니. 형아.
머리핀을 빼 아무 데나 내동댕이쳤다. 받든지 말든지 해, 아무나. 떨어져 뒤진 너면 더욱 좋고. ...시발, 그게 그냥 지금 줄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이야. 정말 죽이려고는 못 했던 등신 동생이 남기는 거라고. 부모님에게 넘치게 받았으니 나한테도, 조금이라도 가져가. 그걸로 끝내. 난 너, 가화새끼 끝까지 저주할테니까. ...부러운 새끼라고.
*
落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