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으로 사유하는 종種들이 잠들지 못하는 밤이네요
이곳에 이제 어둠이란 것은 없어요
그럼 여긴 신약성서에서 약속하는 천국인가요?

| 유형진, 표본실의 나비들





 너와 함께 있는 밤 중에서 이번 어둠이 가장 옅고 길다. 네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며 네 피부를 맘껏 만진다. 손가락 사이로 곱게 흩어지는 것은 머리이고 하얗고 솜털 보송한 것은 네 뺨이지. 감명을 받은 것처럼 한숨을 내쉬며 네 생김새를 눈에 담는다. 갑자기 내가 마음을 쏟아부은 것이 눈을 고이 감은 너구나. 같은 이불에서 같은 달빛을 받고 문득 피어난 것이 안겨있다. 숨은 색색 들려오고. 시선을 멀리 던져보았자 입술을 네 이마에 부비면 결국 닿아있을 뿐이다. 촘촘한 이마에 입술 눌러 찍는다. 간지러운 온도가 막 부끄러운 뽀뽀를 한 것처럼 입가에 맴돈다. 이불 아래 뒤섞여 맞닿은 살은 괜히 열이 올라 난리이다.

 
 너는 그러지 말았어야지. 멋모르는 골목을 따라 졸래졸래 따라와서는 고분히 단잠을 자고있니. 치장을 한 껍데기를 가만 중얼거린다. 무슨 말이지. 나는 원래 익숙한 옛날을 설득하기 위해 마음에 없는 소리도 한다. 형식적인 말을 너에 맞게 오리고 붙이기 위해서. 가령 예쁜 것은, 영화 주인공의 애인일 수도 있고 인기 많은 연예인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그러려니 넘길 것이다. 내가 진정 예쁘다는 건 너야. 그래서 예쁘단 말을 할 때마다 너를 떠올려 작게 웃지. 


밝을 때도 잡았던 네 손을 더듬어 쥐어본다. 꿈을 꾸느라 힘없이 낭창 늘어진 손가락이 손 안에 가득하구나. 너는 아침이 오면 고운 손에 마음까지 넣어서 내 손을 꼭 잡아주니. 너는 볼품없이 말랐다고 할지도 모를 손가락이 내겐 예쁜걸. 

 




붙잡을 것 없는 텅 빈 밤이면
너의 텅 빈 마음을 파고드는 꿈을 꾸기도 하다가

| 황경신, 빈 의자

첫 키스가 마지막까지 숨겼던 어절이 드러나는 시간

| 김명은, 자몽




그래 사랑해. 내 품에서 서로를 얽매는 꿈을 꿔줘. 욕심은 드러내니 한없이 깊구나. 빠져서 평생 목숨을 잃기를 바라는지도 몰라. 너와 약속을 할수록 점점 내 목을... ...조르는 기분이다. 행복하네. 미안해. 네게 얼마만큼의 사랑을 약속받아야 욕심이 끝날지 모르겠어. 그래도 같이 있어주겠니. 




당신의 웃음이 나의 이유였던 날. 이상하게도 소멸을 생각했습니다. 환희 속에서 생각하는 소멸.

| 허연, 폭설




지금이라면 네가 무방비하게 좁고 따스운 널 포옹하며 몇 번이고 쓸어내렸던 등을 드러낸 지금이라면. 아니야. 허상의 꿈이었는걸, 좀 더 살자. 너를 눈에 담은 후엔 숨으로 공기 중에 내보내야지 영영 가두고 있으면 안 돼. 너무 웃지 말렴. 아니다. 많이 웃자. 예뻐서 계속 보고싶어. 우리 너무 오랫동안 웃는 법을 까먹었으니 이제 다시는 잊지 말아야지. 사랑한다는 말은 웃음으로도 할 줄 알아야지.





잠시 훔쳐온 불꽃이었지만
그 온기를 쬐고 있는 동안만은
세상 시름, 두려움도 잊고
따뜻했었다

고맙다
네가 내게 해준 모든 것에 대해
주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 최영미, 옛날의 불꽃




 잘 자. 내일 뜬 눈으로 또 같이 있음을 확인하자. 오늘은 졸음이 오는 게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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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사랑하는 --에게

2016 2019. 11. 7. 10:36


이처럼 날이 밝는 것을 원망스러워하고, 기뻐해본 적 없다. 아무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새벽에는 죽음이 흘러가고 아침은 꾸역꾸역 우리 목 아래까지 차올랐다. 간다. 갈 때가 된 거야. 이제 죽을 때가 된 거야, 그치.

 자살에게 먹이같은 건 안 줘. 난 멍청이처럼 살기 싫어서, 그딴 이유로 죽는 거 아니야. 죽어야 하니까. 그냥 일과처럼 눈에 띄지 않고, 자연스럽게.

 바람이 새삼 차다. 아까까지만 해도 더웠는데.




 



 살인자새끼. 네가 흘러가는 찬 바람처럼 귓가에 속삭인다. 달고 날카로운 말은 귀를 에듯이 맴돌았다. 겨울인가봐, 겨울. 귀를 떼어버릴듯이 비벼버렸다. 손에 닿는 피부의 감촉에 부아가 치밀어오른다. 손을 덮는 옆머리를 뽑아버리고 싶은 분노로 넘어간다. 역시 하고 다니는 게 나았어, 머리핀. 구석에 처박아둔 핀을 찾는 것으로 거슬리는 목소리를 차단한다. 금세 온 집은 차가워졌다. 네가 웃는 소리는 이제 내 안에서 웅웅 울리다 사라진다. 씨발, 부적도 아니고.

 시끄러운 델 가야지. 징그러운 목소리를 뒤에 숨기고 살아있는 것들이 떠드는 소리로 귀를 멀게 하고싶어.
...그리고 나는 그런 곳에 섰다. 그런 조잡한 말로 비웃을 네가 아닌데. 입안이 썼다. 모른다고 했지만 알고있었지. 그냥 두는 게 아닌데, 그날. 내게 떠오른 생각, 거친 감정들만 엮어서 저주인형을 만들어, 수 번을 괴롭히고. 그러니까 결국 이렇게 돼버렸잖아. 토가 올라온다. 의미 없는 소음이 비호감으로 돌아서는 순간이다.

 뭐. 뭐하라고? 죽으라고? 어, 그래. 근데 끈질기기도 엄청나다, 가냘픈 꽃나부랭이가.


 너는 꽃이고 나는 한숨.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넌 여느 꽃처럼 고이 가만히 있었다. 그치만, 그치만... 염병할 엄마, 아빠, 그으, 그 새끼는 나 죽이려고 들었었는데. 나 진짜로 봤는데. 나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는데. 난 정말 가만히, 존재할 뿐이었는데. 꽃밭에 있는 것처럼 투명한 너머에서 예쁨받으면서, 시발, 그렇게 있었는데. 나 존나 죽여버릴 작정이었다고. 그런 표정이었는데. ...착각 아닌데. 엄마. 아빠. ...엄마?






- 한이는 말 함부로 하지 말고. 옷 갈아입고 와.
- 저 관장님 엄마라고 안 불렀는데...
- 시끄럽고, 연습이나 해. 곧 대회잖아.

 아무도 모르게 운동을 배운다. 기억이 안 날 적부터. 기억이 안 나는데 그나마도 혼자 말없이 오고간 것밖에 없으면 대체. 버려지면 그런 것 빼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돈이라도 안 끊은 게 다행이라고 여겼지만, 통장에서 한 달에 얼마씩 빠져나가도록 해둔 거라는 깨달음은 잔인하게 금방 와버린다. 잊혀진 돈이야. 내 목숨값이라고 생각하면 대충 계산이 맞았다. 고등학교는 어떻게 다니는 건지 짐작하다보면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나는 집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가끔 마주치는 건 너. 덤덤한 척하는 얼굴로 깔보고 우월을 남김없이 핥아먹을 이 새끼. 안 가던 길로 가봐도, 일부러 돌아가봐도 한 달에 두어 번은 내 앞에 서는 너. 가끔 위협도 안 되고, 우습기만 한 머리핀으로 네 팔을 찍어버리기도 했다. 힘을 써서 억지로 본 피. 넌 그걸 보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화가 치밀었다. 주먹 쥔 내 손에 핀이 아직 들려있어서 더 미칠 지경이었다. 그걸로 그냥 찌르게, 음.


 그리고 어느 날, 너는 그런 곳에, 섰다. 라디오 시그널 음악처럼. 바람과 애써 기억을 지운 것같은 말소리를 바탕으로. 밀고, 떨어지고, 꽃이 떨어지고, 봄이 온 모양이다. 숨을 짓누르는 꽃잎이 터져나왔다. 붉은 꽃. 그 로고가 나오면 다시 방송 시작이야. 내 옆에서, 뒤에서, 앞에서, ...내 안에서. 잘개 부수고 싶은 반복방송이었다. 손에 힘을 줘 그러쥐었다. 우득, 이렇게 손뼈라도 부숴버릴 수만 있으면 좋을텐데.


-- -  목 뼈는?
- 갈비뼈도 있잖아, 한아.
씨 -  - - --   다 알잖아, 너 잘하잖아. 할 수 있었잖아.


...갑자기 넘긴 머리가 서늘해져온다.











 뭐, 그러니까. 할 수 있었다고, 나. 응. 그 새끼 배도 치고, 얼굴도 갈겨서 죽여버릴 수 있었다고. 그게 가장 먼저 생각나지 않았냐고, 어.

?
 뭘할 수 있었다고. 내가 뭘할 수 있었다고? 아, 제발, 한아. 유치한 얘기 하지 말자. 징징 짜지 마. 그치만 시발, 한아. 내 이름만 들어도 한이 잔뜩 담긴 것 같지 않냐? 그만, 그만해. 하지 말라고.


[ 하지 말라고! ]



...그만. 이런 거 그만. 정말. 뚜욱. 한아, 울지 마. 안 울어, 개새끼야. 너 말에 매가리가 하나도 없어. 응? 응. 그만. 동요하지 않기로 했잖아. 끝까지 그냥 평범하게 뒤지기로. 근데 나 가화 생각이 나서 숨을 못 쉴 것 같아. 





종래엔 나도 이런 곳에 섰다. 바람, 나는 바람들과 손을 잡았고. 여기 애들이랑 다, 죽을 거야. 얘네가 다 나 밀어줄 거야.

가기 전에 말이나 하자. 사랑하는 가화, -- - * -, 씨발, 너처럼 나도 떨어져죽는다. 개새끼야. 그러니까 징그럽게 달라붙어서 계속 헛소리 지껄이지 마.

...제발. 괴로워. 아프니까.


빌어먹게 되고 싶었던 꽃이 돼서, 떨어져.
형과는 달리 난 지옥에 갈 거야.

좆같은 꽃, 같으니. 형아.



 머리핀을 빼 아무 데나 내동댕이쳤다. 받든지 말든지 해, 아무나. 떨어져 뒤진 너면 더욱 좋고. ...시발, 그게 그냥 지금 줄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이야. 정말 죽이려고는 못 했던 등신 동생이 남기는 거라고. 부모님에게 넘치게 받았으니 나한테도, 조금이라도 가져가. 그걸로 끝내. 난 너, 가화새끼 끝까지 저주할테니까. ...부러운 새끼라고.




*

落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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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의 손으로 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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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본다. 아까까지만 해도 낮이었는데 벌써 해가 진다. 주변은 점점 어두워진다. 손에서 펜을 놓고 밖을 바라본다. 새가 우는 소리와 바람 소리가 들린다. 나는 책상에서 일어난다. 사라진지 오래인 흐릿한 기억 속의 A를 생각한다. 거실로 간다. 깜깜하다. 저녁을 먹으려 한다. 먹을 것을 뒤진다. 나는 음식을 사러 밖으로 나간다. 조금 쌀쌀하다. 바람이 분다. 도로를 천천히 걷는다.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음식을 살 곳을 떠올리지만 다른 곳으로 간다. 모르는 도시를 걷는다. ○○한 기분을 느낀다.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내가 펜을 가지고 하던 것을 떠올린다. 그것이 A와 관계되어 있음을 생각한다. A와의 상황도 떠올려본다. 모르는 누군가가 다가온다. 특이한 복장을 하고 있다.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다. 나에게 말을 건다. "되찾고 싶니?" 나는 누군가를 쳐다본다. 누군가와 걸어 호수에 도착한다. 호수에서 말없이 누군가와 놀이를 한다. 완전히 깜깜해진다. 호숫가에 앉는다. 누군가가 나에게 '펜으로 하던 것' 을 달라고 한다. 나는 가지고 있었다. 주니까 누군가는 그걸 한참 보더니 물에 던진다. 녹거나, 가라앉거나, 망가진다. 나는 누군가를 쳐다본다. 누군가도 나를 쳐다본다. "집에 가." 누군가를 호수에 남겨두고 집으로 간다. 낯선 길을 걸으니 집이 있다. 불을 켜지 않고 거실로 간다. 거기 A가 있다. A는 분명 호수에 둔 '펜으로 하던 것' 을 들고 있다. A가 말한다. "되찾고 싶었니?" 누군가는 A.



  흰 종이 위에 붉은 빛이 드리워졌다. 지는 석양에 글씨가 일렁여, 눈을 강박적으로 깜박거린다. 창문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분명 밝을 때가 아까였는데. 금세 어둠이 내려앉을 것만 같다. 이에 나는 펜을 놓는다. 밤에는 그만 생각해야지. 밖은 해가 꼬리를 남기고, 바람을 타는 까마귀가 몇 번 울음을 토하는 거였다. 창문을 닫을까. 나는 그리하여 처음으로 일어선다. 닫는데 새삼 팔다리가 저렸다. 쉬어야 하는데. 뭔가 기분 전환으로, 아래층으로 가야 하는데. 묘하게 너의 생각이 났다. 흐릿하게 맴돌고, 붙잡는 형상. 무얼 또 그런 생각을. 또 그런 기억을. 나는 그저 그것에 아닌 척 몰두하느라 계단에서 자빠질 뻔한 것만 자책한다.

 거실은 내가 돌보지 않는 탓에 어둠이 가득했다. 깜깜해서 눈앞이 흐려진다. 불을 켜기 싫은 마음에 거실은 휘 둘러만 보고 부엌으로 향한다.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원래 내가 하던 대로, 저녁거리를 먹어야 할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냉장고를 연다. 사과 몇 개. 대책없이 찬장을 연다. 곰팡이. 내가 아무리 미쳤기를 곰팡이 핀 사과를 먹는 것으로 두진 않는다. (사과는 모두 괜찮았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사과든지 뭐든지를 사러갈 상황에 놓였다. 무작정 문을 잠그고 나와본다. 벌써 가을? 바람이 꽤 불었다. 아까는 이렇지 않았는데. 쌀쌀한 바람을 맞는 맨발을 신발에 대충 끼워넣는다. 발은 벌써 시리고 까진다.

 이 시간대의 도로는 익숙하지 않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해는 거의 다 지고, 아스팔트에서만 미약한 열기가 낮을 기약한다. 천천히, 걸었다. 왜 서두르겠는가. 아무도 없었고, 정말 아무도 없었다. 아무가 길을 천천히 걸었다. 음식은 어디서 사지요. 모르겠다며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래도 어디로 걸을지는 뻔했다.
 
 ...라는 이유로 나는 어딘가를 또 간다. 딱히 걷는 느낌은 아니었다. 똑같지만 다른 사이를 건너고, 모든 감각을 모른체했다. 요컨대 나는 모르는 도시를 걷는다는 거다. 기어가지 않는 한 어쨌든 걸어가고 있었다. 앉아버리고 싶은 마음은 이미 지났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습게도 위태로운 기분이었다. 바람이 불었다. 귀 옆에서 휭휭, 감쌌다. 아무도 없기에 그렇겠지. 나는 가을을 위로했다. 너야, 뜬금없이 그것을 읽을 수 있다면 좋을텐데. 차마 머릿속에서 박박 긁어내지는 못하고 에둘러 퍼놓은 글자였다. 그래도 너는 이해할 수 있겠지. 하지만 너는 혼란스러울지도 모른다. 상상력에 비해 우리의 상황은 초라하고. 그리고 나는 너의 머리가 어딜 향해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

 다만 다짜고짜 이쪽으로 시선을 향하는 건 어느 새 나타난 이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뭐라고 부르든 아닐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석양의 마지막에, 갑자기 마주한 둘이었다. 전혀 알아볼 수 없는 사람. 분명 내가 해의 흔적을 등지고 있는데. 그에게서 바람처럼 말이 흘렀다.

"되찾고 싶습니까?"

 스윽, 스쳐간다. 나는 이 사람을 마냥 보았다. 이상한 도시에 걸맞는 사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래, 뭔데-, 하고 다시 빤한 눈길로 바라본다. 이 사람은 고개만 끄덕 하더니 머뭇 다가와 손을 살짝 건드렸다. 몇 번의 되물음이 오가고, 이 사람은 겨우 내 손끝만 붙잡고 종종 걷는다.
 
 그렇게 다다른 게 구석의 호수였다. 호수 중에서도 우리는 괜히 비탈길을 올라, 콘크리트 벽 위에 앉는다. 아래는 낮고 낮다. 높구나, 댐인가. 물은 거의 말라 바닥만 채우고 있었다. 나는 여기서 떨어지면 죽겠다- 고 했고, 이 사람은 아까부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한다. 약속처럼 우리는 돌을 몇 개 주워다 뜻없이 아래로 던진다. 내가 던지면 깽깽 부서지고 튀는 소리만 난다. 이 사람은 돌이 다른 것도 아닌데 퍽퍽 바닥에 안착을 한다. 나는 네 소리가 좋다고 내 돌도 자꾸만 주었다. 묵직한 소리가 계속 울렸다. 퍽, 퍽. 가끔가다 철퍽.


 완전히 깜깜해져도 그 소린 듣기 좋았다. 돌은 짙게 낀 어둠을 안고 바닥에 끌려간다. 물은 별 수 없이 사방으로 튀고. 구경하다 다리가 아파 벽에 같이 걸터앉았다. 다리를 흔들거리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다. 돌처럼, 그치- 하는 말을 어리광처럼 속삭였다. 이 사람은 가만히 있더니 천천히 내게 눈길을 옮겼다. 가까이 있어도, 멀리 있는 것처럼. 말소리가 그랬다. 전혀 알 수 없음도 물론이고.

"그거 주세요."

 그렇다면 이것은 또 다른 알 수 없음. 나는 불안하게 되물었다. 이 사람은 표정도 안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말투는.

"그거..."
"제대로,"
"...손에, 요."

 그러고보니 나는 나뭇잎쯤으로 생각했던 게 내 손에 구겨져 들려있었다. 밤에도 하얗게 빛나는 종이. 펴보고 나니까 아까 책상 위의 그 종이였다. 몇 시간 전의 내 글씨가 쓰여져있는 걸 보니 같잖았다. 나는 종이를 이 사람에게 쥐어주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별로 글씨를 자세히 보지도 않고 내가 쥐여준 그대로, 주먹쥔 제 손과 구겨진 하얀 면만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거였다. 종이는 곧 돌이 되어, 이 사람은 그냥 종이를 돌 던지듯 던져버렸다. 철퍽 하는 소리가 났다. 똑같이. 아랠 내려다보니 하얀 점이 젖어 흩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을 보았다. 뭔가 찾으려는 마음이었다. 이 사람도 나를 보았다. 그건 무슨 마음이었을지.

"집에 가야 해요."

 이 사람은 말해버리고, 날 재촉하듯 살짝 밀었다. 가요. 어디를. 너도 집에 가야 한다는 뜻이니. 누가, 누구의 어디에 가야하는데. 모두 말 그대로 벼랑에 몰린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걸어온 길은 짧았다. 뛰어서 오 분, 십 분이었다. 길을 잃을 걱정을 하지 않자 금방 와버린 걸지도 몰랐다. 문을 열고, 들어서고, 거실 앞에서 멈칫한다. 시간이 뭐가 흘렀냐는듯 변한 것 없는 거실. 나는 조용히 거기 발을 놓았다. 거기 네가 있다. 그래서다. 나는 돌이었다. 돌처럼 굳거나, 이 곳에 이끌렸다. 너는 아주 엉망이 된 종이를 들고 있다.

"짜요, 물이."

 더러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종이. 너는 울 듯 웃으며 내게 그렇게 말했다.

"네가 흘린 것처럼. 짜요."

 나는 입술만 깨물었다. 너는 이 사람이었다. 그냥 그랬던 것이다. 눈물이 말라버릴 때가 좋은 때였는데. 이제 네가 울고 있었다. 이끌렸다. 이제야 겨우 나는 돌처럼 몸을 던져 네 눈물을 잠시라도 없애고 싶은데.

"되찾고 싶었어요?"

 그 말에 나는 언제든지.








이거 열 때 되게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아 또 합작뽕 찼음ㅡㅡ;; 이 카페 말고는 글합작을 열 만한 데가 없는데 얼었어ㅠ 아!!!!!합작 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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